변곡점_백요섭 BAEK JOSEPH_2026.6.29-7.8

  「변곡점」은 『비롯된 것들』에서 수행된 산책, 채집, 기록, 실험의 아카이브가 회화의 표면 구조로 압축·전환되는 임계점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비롯된 것들』이 하천과 물가, 식생과 미세한 환경 변화 속에서 감각의 단서를 축적하는 현장 기반의 실천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그러한 축적이 더 이상 자료의 상태에 머물지 않고 색채 층위, 질감, 리듬, 잠복과 노출의 관계로 재조직되는 순간에 주목한다.

  2015년 이후 작업은 사라진 장소, 재개발 현장, 철거와 이주의 표면을 매개로 기억을 재현의 내용이 아니라 작동하는 구조로 다루어 왔다. 팔림세스트적 제작 절차, 색채 층위, 흔적의 조직, 장소 특정적 설치를 경유하며  회화는 무엇을 보여주는 가보다 무엇이 남고 지워지며 어떤 조건에서 다시 떠오르는가를 조직하는 장으로 이동해 왔다. 최근 쓴 논문에서 이것이 ‘대안적 기억 장치’에서 ‘회화적 기억장치’로의 구체화로 정리되었다면, 「변곡점」은 그 개념이 이후 회화의 방법론으로 본격화되는 첫 전시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변화는 상실된 장소를 호출하는 시선이 현재의 환경을 감각적으로 읽는 시선으로 확장된다는 데 있다. 작가는 더 이상 과거의 장소를 회고적으로 붙드는 데 머물지 않는다. 대신 반복된 산책 속에서 마주친 물빛의 반사, 바람에 꺾이는 풀의 방향, 젖은 흙의 밀도, 돌과 벽면의 거칠기,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공기와 빛의 미세한 감각을 회화의 단초로 삼는다. 이는 기억의 포기가 아니라 기억의 작동 범위가 상실의 서사에서 현재의 생성적 환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변곡점」의 회화는 특정 장소를 옮겨 그린 풍경화가 아니며, 현장에서 채집된 사진, 프로타주, 메모, 채집물, 그리고 몸에 축적된 감각의 리듬이 화면 안에서 다시 결합한 결과이다. 화면은 하나의 장면을 설명하기보다, 감각 단서들이 어떻게 표면 내부의 층위로 재배열되는지를 드러내는 장이 된다.

이 지점에서 「변곡점」은 아카이브 이후의 회화가 어떤 형식으로 가능해지는지를 제시한다. 아카이브는 더 이상 회화를 위한 외부 참고자료가 아니라, 회화 내부를 작동시키는 생성 조건이 된다. 걷기의 시간은 화면의 호흡과 분절로, 채집의 방식은 단서의 선별과 배치로, 실험의 과정은 안료층의 두께와 광택, 긁힘과 반사, 잠복과 노출의 조절로 이행한다. 다시 말해 기록은 화면 밖에 보관되지 않고, 표면의 구조 그 자체로 내면화된다.

  이러한 전환은 이후 작업의 방향도 예고한다. 앞으로의 회화는 상실된 장소의 재현에서 더 멀어지는 대신,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변화와 환경적 감응을 더욱 예민하게 포착할 것이다. 장소의 흔적은 사건의 증거로 제시되기보다 표면을 발생시키는 조건으로 작동하고, 전시는 개별 작품의 나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와 감각 단서가 충돌·결합하는 읽기의 구조로 확장될 것이다. 이때 회화는 기억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기억과 환경, 표면과 관람의 시간을 함께 조직하는 장치가 된다.

  결국 「변곡점」은 『비롯된 것들』의 후속 전시라기보다 작업이 아카이브적 실천에서 회화적 실천으로 굴절되는 지점을 가시화하는 전시이다. 이 전시에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각은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흐름은 하나의 표면 안에서 서로를 통과하며, 이후 회화가 나아갈 방향, 즉 백요섭의 회화를 ‘회화적 기억장치’로 구축하는 방향을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_백요섭

instagram@baek_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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