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FLUX_삼인전_김민주, 심성훈, 한영은_2026.5.1-5.15

환경조사국 BEI-Bureau of Environmental Investigation

반복되는 노동이나 당연시 여겨지는 일들에 시선이 머문다.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하지만 너무 익숙해 배경처럼 지나치는 장면들이다.
이러한 장면들을 ‘사건’이라 부르며 기록한다. 가상의 조직인 ‘환경조사국’을 설정하고, 그 안 에서 장면을 사건으로 재분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손바느질은 기록을 만드는 하나의 매개다. 시간이 오래 걸리며 반복을 통한 선과 실의 흔적은 표면 위에 쌓인다. 노동의 시간이 표면에 남는 과정은 보이지 않던 노동을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이 기록이 하나의 답이 아닌 질문으로 남기를 바란다.

_김민주
Instagram @kimkim.forest

줄곧 어떤 징후를 감지하고 있었다. 작고 사소한 존재들의 떨림과 두려움, 광막한 삶. 눈앞에는 작은 언덕과 나무들이 있고, 벌과 나비가 날아다닌다. 덥고 답답한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몽롱한 정신으로 창밖의 배달 라이더를 바라본다. 그는 신호를 기다리며 시집을 읽는다. 버려진 개들은 교외의 도롯가를 배회하고, 송진 가루가 노란 유령처럼 바람 속에 휘날린다. 졸리고 어지럽다. 시간이 생명과 죽음을 포기한 것처럼. 내가 아는 세상은 있으면서 없고, 없는데 있다.

그리고, 근래의 작업은 소설가 배수아의 중편소설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의 한 문장을 되뇐다.

우리는 벌이나 나방처럼, 뇌의 머나먼 곳에서 발생한 기이한 파장의 지배를 받았다.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배수아, 워크룸프레스, 2019, p.84

보이지 않는 파장으로 행동이 지침 되고 사건이 이룩되는 것······.

혼자 어떤 생각이나 감각에 잠겨 있을 때 불쑥 날아와 맴도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그것을 구체화하기 이전에 먼저 알아채고, 어떤 언어의 입 모양이나 흐릿한 이미지의 실마리를 건네고 사라진다. 나는 그 순간들 속에서 인간의 사유와 감각에 개입하는 비정형의 존재성, 비인간 생명체들의 독특한 방식을 배운다. 그들로 말미암아 내게 주어진 삶과 현실의 풍경들을 어쩌면 진실하고, 고유하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인간의 길이 더는 가망 없을 때, 벌과 나방, 달팽이와 새, 도롱뇽은 지속 가능한 삶의 방법이 우리 자신의 신실함과 타자를 바라보는 존엄한 시선 가운데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들은 나의 영적 셰르파. 희박한 공기 속에서 지금까지 없던 호흡을 배우며 새로운 뇌파의 인도를 받는다.

우리를 지배하는 파장은 세상의 가려진 존재들 쪽으로, 사라져가는 것들 쪽으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연약함 쪽으로 이끈다. 꿈속에서 환상을 보듯, 자연과 비인간 동물, 필멸자들의 서사를 무력한 평면 세계의 가능성으로 밀어붙인다. 꿈인지 망상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현실이면서 동시에 현실일 수 없는 세계를 갈망하며, ‘오직 회화’라는 신뢰와 믿음으로.

_심성훈

Instagram@simmsunghoon

나는 ‘잊혀짐’을 진정한 죽음이라 보고 망각되어져가는 존재들에 대한 아쉬움으로부터 작업 을 시작한다. 나는 이러한 죽음(망각)의 필연성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붙잡기 위해, 잊혀진 존재들을 크리쳐(혼성존재)로 부활시킨 가상세계인 <후처월드>를 구축한다.

이 세계 안에서 크리쳐들은 기존의 모습이 아닌 여러 가지가 뒤섞인 혼종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며, 옴니버스 형식의 각 작품 속에서 주·조연으로 재등장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무한정 생산되는 크리쳐들은 <후처월드>의 핵심 요소이자 망각에 저항하는 존재론적 증거가 된 다.

작업 과정에서는 루이보스티로 염색한 천을 오븐에 굽거나 의도적으로 손상시켜 ‘잊혀짐’이 라는 시간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일반적인 차의 범주에서 벗어난 루이보스의 성질은 경계 에 서 있는 크리쳐의 속성과 닮아있어 중요재료로 채택하였다. 그 위에 목탄 드로잉과 실, 비 즈를 이용한 자수를 더하는데, 자수는 기존의 기억 위로 새로이 덧씌워지는 모습이자 기억이 변형되고 재배치되었음을 시각화하는 장치이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벽한 복원이 불가능한 기억의 속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피 어나는 새로운 찬란함을 역설한다. 이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것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 수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

_한영은

Instagram@hutureworld_ar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