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odia Ethereal_유하은 Yoo Haeun_2025.9.23-10.1

유오디아 에테리얼: 흙과 빛의 춤

흙을 만지는 일은 결과를 만드는 동시에 시간을 빚는 일입니다. 공예는 손의 리듬으로 축적된 시간의 예술이고, 그 리듬은 공동체의 기억과 맞닿아 있습니다. 산업화 이후 많은 사물에서 손의 온기가 지워졌지만, 흙은 여전히 손의 호흡을 기억합니다. 저는 그 기억을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내고 싶습니다.

제 작업은 한때 ‘인간 관계’라는 군상을 바라보는 조형 실험에서 출발했습니다. 이후 시선을 자연으로 확장하면서, 꽃술처럼 미시적인 구조가 가진 생명력에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꽃술은 보통 꽃잎 뒤에 감춰져 있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수많은 개체가 서로를 밀어 올리며 한 덩어리의 리듬을 이룹니다. 저는 그 ‘모여 있음’의 긴장과 ‘피어날 듯한’ 상태를 도자 조형으로 번역합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실제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신 반복된 요소들이 군상을 이루며 잠재된 운동성을 형성합니다. 관람자가 작품 앞에서 속도를 늦추고 위치를 달리할 때, 시선의 각도 변화가 구조의 리듬을 드러냅니다. 빛은 주인공이기보다 증폭기로 작동합니다. 표면의 결과 유약의 미세한 차이가 빛을 받아 미묘한 편차를 만들고, 그 편차가 조형 내부의 리듬을 관찰 가능한 감각으로 밀어 올립니다. 저는 이 조용한 변주를 ‘정지된 움직임’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도자의 본질은 ‘비움’이 형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비워진 내부가 외형의 리듬을 결정합니다. 제 작업도 그 비움에서 출발합니다. 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군상 속에서 각각의 개체는 소리를 죽인 채 서로의 간격으로 말을 겁니다. 관람은 그 간격을 더듬는 행위이고, 그때 비로소 운동성은 관람자의 몸에서 완성됩니다.

저는 공예가 전통의 언어로만 머물지 않고 동시대의 감각과 연결되길 바랍니다. 기계 장치의 직접적인 움직임을 차용하기보다, 조형 자체의 구조와 관람 행위가 만들어내는 시간성을 탐구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선택입니다. “흙과 빛의 춤”은 거대한 장치의 공연이 아니라, 아주 작은 차이들이 켜켜이 포개져 생명력을 환기하는 느린 춤입니다. 작품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손과 눈의 리듬을 자신의 호흡과 겹쳐 보시길 바랍니다. 그 순간, 정지된 형상은 스스로의 시간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_ 작가노트

이 사업은 대전광역시, (주) 대전문화재단에서 사업비 일부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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