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작업의 전환이 된 2015년, 매서운 추위에서 목련의 꽃망울이 하나 둘 보일 때 쯤 이었다. 두 가지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예술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러 과정 속에 두 권의 책이 의문의 실마리로 다가왔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글 속 10개 편지는 그간 뒤덮여 있던 생각의 열쇠를 열어 쥐어 주었다.

첫 번째 편지
당신에겐 단 한 가지 길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중략)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답을 얻으려면 당신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만약 이에 대한 답이 긍정적으로 나오면, 즉 이 더없이 진지한 질문에 대해 당신이 “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력하고도 짤막한 말로 답할 수 있으면,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두 번째 편지
(중략)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으며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당신의 귀에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감방에 당신이 갇혀 있다고 할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재산을, 그 기억의 보물 창고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으로 당신의 관심을 돌리십시오. 까마득히 머나먼 옛날의 가라앉아버린 감동들을 건져 올리려고 애써 보십시오.
(중략)
그리하여 이와 같은 내면으로의 전향(轉向)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세계로의 이 같은 침잠으로 부터 시가 흘러나오게 되면,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시가 좋은 시인지 아닌지를 묻는 일은 생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방향, 실험 방식, 태도를 가지고 지속할 수 있는 자양분과 용기를 얻었다.

두 번째 책 마르셀 푸르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작업 방식의 전환이 되는 PALIMPSEST와 시간성의 개념을 얻었다.
“레오니 고모가 나에게 준, 보리수 꽃을 달린 더운 물에 담근 한 조각의 마들렌 맛임을 깨닫자 즉시 거리에서 면한, 고모의 방이 있는 회색의 옛 가옥이 극의 무대 장치처럼 나타나, … 작은 별채와 결부되었다. … 그러한 모든 것이 형태를 갖추고 뿌리를 내려, 마을과 정원과 더불어 나의 찻잔에서 나왔다.” –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2015년부터 현재까지 회화적 실험이 위 대목에서 말하는 마들렌 한 조각을 차에 넣어 베어 문 순간, 어릴 적 고모 집에서의 기억이 소용돌이처럼 엄습해오는 느낌을 표현하는 것 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중첩된 시간 속 기억의 문제를 보여주기 위하여, ‘PALIMPSEST’ 개념을 끌어 왔다. 선형적 시간 순서상 앞에 쓰인 텍스트와 뒤에 쓰인 텍스트가 한 화면에 중첩되는 지점은 시간과 기억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에 대해 돌이켜 보게 한다. 작업 방식의 전환 이후 현재까지의 회화적 실험은PALIMPSEST와 같은 중첩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사이와 틈에 다양한 것들은 충돌시켜 진행하고 있다.

2
뒤덮인 것들은 세워진다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작업 전환이 이루어 진 후 들여다 본 기억의 부재를 보여준 프로젝트(2018-2022)와 새로운 충돌로 얻어진 회화의 방향과 결과물을 뜻한다. 이번 전시 대표 작업 중에 ‘뒤덮인 것들에 가상적 흔적이 끼워지는 순간, 캔버스 위 유화, 혼합매체, 각130.3x97cm, 2024(8ea)’는 지난 회화 기법 다음의 회화 표현을 보여 주고자 한다. 공통적으로 들어간 덩어리의 충돌, 덜 마무리 된 듯한 단층의 레이어를 포함한 시도를 보여주며 앞으로의 회화 전개 방향과 유사하다.
두 번째, 프로젝트에서 겪은 용문1,2,3구역 재개발로 원주민의 사라진 장소와 새로운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뜻한다.
2020 변신 흔적으로 남은 시간들, 2021 상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 2022 공든 것은 무너진다, 2022 넥스트 코드에서 상실된 장소와 기억 그것을 소환하는 흔적들 그리고 철거와 마지막까지 함께 남아있던 노인을 이야기 하였다.

2024 뒤덮인 것들은 세워진다. 개인전에서는 용문1,2,3구역의 이주민의 상실된 장소에서 다시 세워진 새 아파트, 앞으로의 새로운 미래를 작업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
전시 작업 중에 ‘뒤덮인 것들은 ( ) 진다. 프로타주 위에 혼합매체, 265.6×366.3cm, 2024’은 사라진 장소의 흔적을 프로타주 방식을 채집하여 그 위에 사라진 도로명 표지판, 용문123구역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한 부분을 충돌시켜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공존해있던 익숙한 장소가 소멸되고 다시 우리 앞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였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고 말할 수 있는지 복합적 질문을 던지고자 하였다.
3
2015년 이후의 회화 작업에서 모호함을 나열하고 쌓았다. 2018년 시작된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아카이빙 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회화 작업의 모호한 지점을 보완하였다.
‘뒤덮인 것들은 세워진다’ 이후의 회화 작업의 방향은 프로젝트에서 얻어진 구체적 대상(채집물)을 2015년 지속해온 회화에 충돌시켜 확장하려 한다.

예를 들면 ‘뒤덮인 것들에 가상적 흔적이 끼워지는 순간24-2’, ‘뒤덮인 것들에 대한 실험24-31’ 은 프로젝트에서 발견한 죽은 고목나무 위에 뒤덮인 이끼와 용문1,2,3구역의 휘발 되고 부서진 잔해의 시간을 회화의 층위로 표현하고 두 가지를 접합시키는 시도의 작업이다.
‘뒤덮인 것들에 대한 실험24-1,2’ 에서 사라진 용문1,2,3구역을 회화에서 수직의 레이어 된 선으로 표현하고 사이에 ‘뒤덮인 것들은 ( ) 진다.’ 의 유리병 속 파편을 배치하는 등 회화와 프로젝트로 얻은 대상들을 충돌 시켜 하나의 화면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위에 설명한 작업들이 회화의 방향성으로 유효한 설득력을 갖을 수 있게 지속 중에 있으며 뒤덮이고 세워지고, 다시 무너짐의 반복속에서,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instargram/baek_joseph
artistb217@gmail.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