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새벽 내게 남겨진 것들을 본다. 뛰고 있는 심장과 열 손가락, 고른 숨, 한 번 더 일어날 수 있는 힘. 세상을 떠나간 것들만큼 남겨진 것들이 많다.

몸을 씻고 남겨진 것들을 입고 먹는다.
때로 일상과 삶은 조용하고 별 탈이 없는 까닭에, 생겼다가 이내 사라지고 마는 새벽안개처럼 무색무취하고 눅눅한 타성으로 물든다. 규칙적인 일과와 무표정한 삶은 별 탈이 없기를, 없어야만 함을, 믿고 싶고 또 믿어야만 하는 유약한 사람의 간절한 소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얼마나 깨지기 쉬운가.
이 세상에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매일 깨지면서 알았다. 황망함에, 깨진 조각을 주섬주섬 다시 이어 붙일 때면, 확정할 수 있는 것이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왜곡된 믿음으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 그 또한 어김없이 깨져버린다.

남겨진 것들을 어르고 모아 발밑에 모아두고 바라본다. 죽음 가운데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인가. 그러면 나는 생존자들과 또 하루의 아침을 시작해야 하나. 새벽과 낮과 밤은 온통 장례를 치르는 마음으로, 오늘이 지나면 잃어버릴 그 누군가의 존재를 미리 망각하면서, 돌고 돌고 돈다.
남겨진 이들을 바라보며 구직자, 실직자, 멸종자, 방랑자, 실종자, 부상자, 은둔자, 이름을 불러주었다. 시인이 너희의 이름을 불렀듯 나는 그리는 사람이 되어 우리의 모습을 그리겠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핍진한 그리기의 욕망이 우리의 한없는 고독과 좌절을 넘어서지 않도록 하겠다고, 너희의 이름을 감추고 내 이름을 쓰지 않겠다고, 홀로 다짐한다.

나는 회화를 남기며 산다. 때로 그것은 삶의 부적절한 부산물처럼 여겨진다. 세상에 회화가 더 필요할까. 회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회화는 무엇일까. 나는 왜 회화를 남길까.
그림과 예술이라는 깃발을 들고 어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나아갈 곳이 있기는 할까.

잠들기 전 남긴 기도에서 부디 내일 새벽에는 사라지기를 원한다고 되뇌었던 것이, 도리어 살아지는 힘이 되어 돌아온 것일까.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한 마디 음성만이 맴돈다.
“오늘 내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회화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회화는 머지않아 도래할 미래의 기억을 그리는 일이다. 회화는 망각에 맞서 오늘을 기억하는 힘이다. 그릴 수 있는 미래가 있다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는, 낭패감에 절고 닳은 소리를, 말하는 대신 끄적인다.
눈을 감고 삶과 죽음의 굴레를 묵상한다.
여기로 왔고 여기에서 떠날 것이다. 시작과 끝이 여기에 있다. 좋거나 싫거나 여기에 모든 것이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없다.
눈을 감고 나를 지운다.
남겨진 것 이후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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