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각(hallucination)은 대상 없는 지각, 외부로부터 자극이 없는데 소리를 듣거나, 물건이 보이거나, 냄새를 맡거나, 맛이 나거나, 만져졌다고 체험하는 것이다. 환청, 환시, 환후, 환미, 환촉…… 우리의 모든 감각기관에서 약물, 정신장애, 심리적 요인 등 수많은 원인에 의해 이러한 감각의 오작동은 일어 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 대상 없는 지각’을 우리의 뇌를 포함한 감각 센싱 시스템의 ‘오작동’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것은 뇌의 정보 처리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발생하는 감각의 증폭, 감각의 확장 현상이 아닐까. 인류 최초의 예술작품이라 말해지는 선사시대의 동굴벽화에서부터 이미지를 이용한 환각 작용은 시작되었고, 현대 디지털 기술에 의해 구현되는 초고해상도의 하이퍼리얼 가상현실들은 이미 환각의 수준을 넘어서서 인간 감각의 영역과 한계 자체를 뛰어넘고 있다. 그 많은 환각 중 최상의 퀄리티를 가지는 것은 아마도 예술적 체험에 의한 것일 것이다. 예술작품을 맞닥뜨리고 그 안으로 몰입해 들어가면서, 감각이 휘저어지고, 의식작용이 출렁이는, 감각과 의식 시스템의 교란을 우리는 예술적 체험이라고 부른다.

‘환시_소리의 숲’은 만화경 이미지와 목소리 나래이션으로 낯선 감각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사운드 영상 설치 작업이다. 여러 개의 작은 스피커들이 공간에 매달려 있고, 그 스피커 하나하나에는 목소리와 텍스트가 있다. 끊임없이 흐르고 점멸하는 만화경 이미지에 홀리며, 텍스트를 가진 목소리의 중얼거림 사이를 걷다 보면, 분자적인 이미지와 소리가 합쳐지고 연결되면서, 감각은 뇌의 회로를 타고 흐르고, 우리의 정신에도 운동을 부여하며 감각적 사유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확장된 감각의 공간, 환시의 소리의 숲을 거닐게 된다.

“눈을 감으면 질감은 빛과 검정의 콘트라스트로 번쩍인다. 뇌를 흔들어 안구를 흔들어 빛에 노출시키면 그 빛은 더 하얗게 하얗게. 그 흔들리는 리듬은 하나 거슬리는 것 없이 흐르고 이어지고 녹아 내리고 올라 붙어 몸으로 이어져 흐르며 무희는 거기에 있는 듯 없는 듯 계속 춤을 춘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날카롭고 예리해지며 공간을 가른다. 살갗 위의 란제리 레이스는 곤충의 얇디 얇은 날개. 파리의 투명하고 바스락거리는 날개 막처럼 맨 살의 피부 표면으로 펼쳐지고, 그 살갗 위의 란제리를 가늘고 끝이 살짝 꼬부라진 바늘 끝으로 그 표면을 긁는다. 바늘 끝에 살짝 터져 긁히는 섬유 실 한 오라기, 표피란 딱 그만큼의 깊이이다.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의 화려한 몸짓과 공간을 가르는 깃털의 곤두섬, 손끝과 곤충 날개의 얇음과 예리함은 시간과 공간을 가르기 시작한다. 목도 가르고 숨도 가르고 목숨을 가르고, 그게 목숨을 끊는다는 거야. 가르고 갈라 그 시간과 공간의 틈새가 저며질 때, 시간과 공간이 꼬이기 시작한다. 감각이 꼬이고 관계가 꼬이고 나이가 꼬이고 세월이 꼬인다. 이게 인간의 감각이다. 피부를 타고 흐르면서 휘돌아 감기는 것 그리고 표피처럼 얇아지다 결국 사라지는 것. 동물이 무엇이냐, 움직이는 물건, 인간이 무엇이냐, 철학 필로소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성과 학문 그 많은 이론들 텍스트 언어 랭귀지 방언, 시간이 무엇이고 공간이 무엇이냐. 차원이 뒤틀리기 시작하면 무한으로 빠져든다. 2차원과 3차원, 3차원과 4차원이 꼬이고, 나선형의 의식은 겹겹이 점멸하며 위로위로 상승한다. 우주와 만다라의 상투적임과 하얀 빛 그러나 시공간이 꼬인, 또다시 상투적인 이 현실 어딘가에 빨려 들어와 떨어져 버리면 억겁의 반복이 시작된다. 각자는 각자의 죽음으로 빠져든다. 아인슈타인도 프로이트도 니체도 고흐도 다 각자의 꼬인 시공간으로 넘어가버려 그렇게들 목숨을 끊고 죽어나간다.” (여자 목소리의 텍스트에서 발췌)

Inner Seeing_ Sound Forest Sound & Video Installation Text & Voice_ Park Jungsun, Wi Hyeongseok



“세상 모든 예술과 감각, 그 감성을 이해한다. 날 기분 좋게 하는 것은 루프의 무한 반복의 끝에 대답을 주는 것. 스스로를 그렇게 달래본다. 밖으로 해돋이 산책을 나간다. 여명의 찬 바깥 공기가 미세한 피부 구멍을 통해 육신으로 들어온다. 바람이 만들어낸 파도의 패턴과 움직임에 몰입한다. 하늘에 무언가 날고 있다. 그것은 내게서 멀어지면 곤충이 되었다가 다가오면 이제 다시 갈매기가 된다. 나는 대지의 에너지를 빨아 흡수한다. 조류와 파도의 큰 흐름을 이제서야 이해할 것 같다. 지평선 너머 하늘에 놓인 구름이 마치 젖은 종이 위로 떨어진 붓의 터치처럼, 빛과 함께 하늘에 번진다. 합치의 확신이 생기자 조금은 마음의 자유를 얻는다. 우리의 여행은 각자의 언어로 기록된다. 우리가 남의 여행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언어는 하찮은 것이다. 언어의 형태로는 규정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 초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경험. 타자와 나의 경계들이 온전히 인식되자, 참을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온다.” (남자 목소리의 텍스트에서 발췌) _작가노트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산실 전시공간긴급지원 사업 선정-
박정선
Park, Jung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