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_ 노형규 Noh Hyung Kyu_ 2022.7.11-7.20

지극히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표현하자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작가에게 덮인 무언가를 태우는 일이다.  일정한 주기를 정하여 태우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본래의 ‘나’ 는 다른 자아로부터 덮여 있게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있어 덮이는 것이란 사회라는 커다란 그룹이 정한 일종의 규칙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회라는 하나의 집단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떠한 누군가 만들어 놓은 규정과 틀 안에 맞추어 살며, 사회로부터 외면 받지 않기 위해 또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그들이 정한 틀과 규정을 뒤집어쓰고 살아야 한다. 덮이는 것은 마치 우리가 입는 의복과 같은 역할을 하며, 본래의 자신을 가리는 동시에 획일화 시키는 과정을 가진다. 이 획일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작가는 타의 또한 자의로 인해 자신을 덮고 있는 규정과 편견으로부터 지배당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고 그 끝에 정한 방식이 바로 자신을 태우는 일이다. 태우는 행위는 자신을 뒤덮은 것으로부터의 자유의지와 또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자 본래의 ‘나’ 를 지키기 위한 작가의 저항이 되며 이것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인 것이다.

작가가 선택한 태우는 행위는 주변의 것 또는 사회의 틀과 규정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오직 자신만을 태우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굴레와 규칙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자신에게 덮인 것을 태우는 행위를 통해 본래의 자신을 잃지 않도록 산다면 사회가 바뀌지 않더라도 ‘나’ 의 모습 만큼은 바뀌게 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이전에 잃어버렸던 순수한 자신을 만나게 되며, 획일화를 통해 한 가지의 목적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개개인의 꿈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계속되는 허무한 삶과 성공이라는 단편적인 목적을 위해 무한한 경쟁사회로 우리를 몰아넣고 있다. 끝없는 갈급함과 단편적인 목적을 향해 스스로를 계속해서 낭떠러지로 밀어내며 꿈과 이상 보다는 물질과 권력을 우선시하며 소멸해가는 자신의 자아를 찾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태우는 행위의 주된 목적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태우는 행위를 통해 이 굴레를 끊어 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끝없이 무한한 허무주의를 계속해서 대면하게 되며 아무런 목적 없이 오직 성공 또는 돈 이라는 단편적 목적만을 가지고 살던 이전의 시대를 다시 답습, 되풀이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태우는 행위와 날아가는 연기와 재의 모습은 이러한 삶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며, 작가에게 있어서 잃어버렸던 자신을 대면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작품 안에선 불이 나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 속에 인물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고 태운 후 남은 것들을 확인하고 반복한다. 태우고 남은 재가 날아갈 때 그 것들이 무엇인지 타인은 알 수 없다. 날아가는 재의 형태를 보며 나를 뒤덮고 있었던 것들을 그저 마주할 뿐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이자 대상을 태우는 작업은 작가에게 있어 최소한의 생존 방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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