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된 공간_박병현 Park Byeong Hyeon_ 2022.6.1-6.9

“엔지니어와 부서지고 녹슨 로봇들의 이야기”

 그는 시골마을 태생 로봇 엔지니어이다. 어릴 적 세상을 지키는 로봇에 감동받아 로봇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로봇과 함께 세상을 누볐다. 공사현장, 집 마당, 그리고 거리를. 거대한 로봇에 비하면 공구, 굴삭기, 트럭은 마치 장난감마냥 느껴졌다. 그렇게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어둠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어둠은 사람들에게 힘을 쥐어줬다. 돈, 명예, 권력 을 갖고 싶게 하고, 각기 다른 욕망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서 있게 만들었다. 그들은 힘을 갖기 위해 힘을 휘두르고, 다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우월감을 내비쳤다. 어둠은 자신이 만든 광경을 보고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엔지니어는 왠지 모르게 익숙하고, 두려운 기분을 느꼈다. 그는 점점 커져가는 어둠에 대적하기 위해 로봇을 만들고자 연구실에 들어갔다.

 나의 작업은 마치 상자에서 장난감을 꺼내는 것과 같다. 낡고 허름한 상자지만 그곳에서 여러 장난감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사회는 마치 커다란 상자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결국 약자들은 깨지고 부서진다. 이러한 사회구조는 나에게 ‘멜랑콜리’한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게 하고,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장난감을 갖고 놀던 기억과, 뛰놀던 장소들은 작업의 모티프가 된다. 그 다음 이 소재와 모티프를 떠올리게 만든 상황을 결합시킴으로 나만의 공간과 재료들이 갖추어 진다. 그 공간에서 나는 로봇을 만들고, 저마다의 역할을 부여한 뒤, 공간에 배치한 후 장난감 놀이를 시작한다. 이 장난감 놀이가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으로 구현되어 작업이 된다. 말하자면 현실에서 ‘멜랑콜리’를 느끼고 그 감정이 ‘노스탤지어‘화하여 과거의 기억과 현실이 겹쳐져 나만의 유토피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놀이는 사물에도 적용되기도 한다. 그것은 외로움에서 오는 그리움이다. 가족의 품, 고향, 그리고 아버지의 장비들이 마치 장난감 같던 기억이… 나는 그것을  이미지로 재현하여 나의 공간을 다시금 만들어간다.

 상상과 일상 사이에서 태어나는 장난감들은 각각의 사연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를 중심으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느껴진다. 그래서 그와 대비되는 거대한, 그리고 동경하던 영웅들을 꺼내게 된다. 그들은 작업 속에서 대신 맞서주고 부서진다. 그렇게 나만의 ‘유토피아’를 작업 속에서 이끌어낸다. 하지만 때론 부서지고 녹슨 로봇들이 ‘디스토피아’적인 ‘알레고리’를 형성한다. 그 모습이 현실이고, 상처이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로봇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것이다. 가치관 자체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마다의 어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어둠을 나의 로봇들이 물리치길 바란다. 마치 섬광 같은 빛으로!!!

 오늘도 엔지니어는 작업실에 들어가 로봇을 만들기 시작한다.

박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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