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ut of academy art
대학 미술 출구 및 우회로를 찾아서
#1. 개성을 강조하고 남과 차별화된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가상을 기르고 그로부터 전제된 일관성 있는 개념 및 양식의 작품 생산을 배양하려는 대학(과 대학원)에서의 미술 전공 과정. 양식적 새로움에 대한 경합의 무대를 위한 감각의 투여는 내게 어떤 동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어지러움을 준다. 또한 사회 실천적 미술, 예컨대 기후 위기, 생태적 위기나 불안, 경제적 탈성장 등의 거대한 사회적인 문제에 대응하는 비판이나 실천 행위 등이 미술과 관련해 볼 때 접점이 막연해진다. 한 편에 개인적인 소수성과 부정성을 천착하고 드러내면서 자기 정체성화하는 것 또한 왠지 몇 년의 틀 속에서 작가 주체성이 주입되는 것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과거의 나는 이렇게 예민했던가. 그 때 생각 없이 즐기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위한 미학은 또 얼마나 냉혹하게 외면하게 되었나. 이 흐름 속에 미술 예술이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어떤 효능과 가치가 있을까. 구체적으로 느끼고 싶다.

막연하게 디자인을 전공했다가 회화로 편입한 대학/미술 전공 제도에 많은 피로감과 우울한 무기력감이 함께 했다. 이러한 감정들은 내 안에 있는 작가에 대한 욕망과 미련, 그로 인한 복잡한 감정인 듯하다. 다양한 동시대 미술의 성공 사례를 배우고 찾았지만, 그 성공과 나의 상황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격차 또한 엄습한다. 미술을 안 하면 그만이고 편할 것 같은데, 사회생활 또한 녹록지 않다. 휴학과 복학의 지난한 고민의 기간이 준 교훈이다. 그러나 졸업을 위해 무언가 해야만 한다. 두 가지 상반된 이유가 내 안에서 다툰다. 하나는 대학 전공 관련해 온 생활에 대한 아까움이다. 표현을 원활하게 하지 않았을 뿐, 미술과 예술에 대한 아무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민들이 산발적으로 깊었던 탓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 그 번민의 시간들을 경유했음에도 이렇다 할만한 작품발표의 결정체들이 별로 없다는 상황이다. 작품은 누군가에게 구체적인 효능감을 주는 게 확인되지 않은 채 어정쩡한 짐이나 쓰레기가 될 것 같고, 이러한 의문이 향하는 곳은 도처에 많지만, 여전히 빈번하게 전시는 가동되는 현상에서 질문은 향할 바를 모른 채 안에서 맴돈다. 이 미술적 결정과 표현의 충동, 그리고 망설임과 미룸의 양가감정에서 자꾸만 안으로 침잠하고 퇴행하는 악순환을 끈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해야만 한다. 토하고 나오면 시들해지더라도. 현재를 써봐야겠다.

#2. 나는 어쩌면 이 작품을 보러온 사람들을 부끄러운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체 없음, 모방이라는 궁색한 양식 뒤에서. 이러한 모습들은 남을 빌어서 본 나의 자화상일 것이다. 나의 고민과 주제를 마치 누군가 먼저 맵시 있게 표현해버려서 할 일을 빼앗긴 심정일까, 아니면 그 작업을 봄으로써 비로소 생긴 나도 같은 고민을 했었다는 착각일까. 질투에 의한 기생과 불안에 기인한 위장술이란 말이 이 작업에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누군가의 작품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오마주인가, 참조인가, 모방인가, 반복인가. 주체와 자아의 향방은 숨겨지고 짐은 가벼워질까. 반복의 반복.

#3. 아직 나에게 미술 안에서의 신념은 없다. 나의 삶을 투신할 만큼의 가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순수, 아카데미… 이런 것들과 거리를 두고 보는 요즘이다. ‘아, 이 쓸모없는 것들의 가치로움이여’ 이 말을 되뇌이는 날이 언젠가 “다시?”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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