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히 팡파레 Fanfare Silently_ 김영웅 Kim Yeong-Ung_ 2021.12.3-12.11
물질의 속성과 크기가 모두 다른 단위가 모여 이룬 장면은,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황극 혹은 수면 아래에 에너지를 그득하게 담고 있는 거대한 바다처럼 느껴진다.
불규칙한 흐름 속에서 모든 땀땀이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유영한다.
그렇게 한 공간에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
‘땀땀이’란 화면 위에 펜, 물감, 포맥스, 천, 실 등으로 이루어진 덩어리 하나하나를 말한다. 한 땀 한 땀, 땀흘려 만든 나의 땀땀이는 대상을 명암 없이 오직 선으로 그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선으로만 그린 형상이 무척이나 조형적으로 다가온다. 원본과 그림은 전혀 다른 듯하면서도또 닮은 듯하다. 원본과의 비교 없이 오직 그림 그 자체를 본다. 더 이상 사물을 전혀 닮게 그리 지 않아도 되며 원근법을 이탈해도 충분히 괜찮다는 이 지점에서, 짜릿짜릿한 해방감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모티프, 즉 대상이 아닌, 대상을 이루고 있는 온갖 다양한 점, 선, 덩어리 등의 형태다. 그 단위를 그러모아 조합하고 배치한 후 분해한다. 더 작은 단위로 부서지기도 하고, 새롭고 낯선 단위와 기존의 단위가 합쳐져 혼종이 되기도 한다. 땀땀이가 부서져 다르게 사용될 때, 그 땀땀이는 전과는 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새로운 땀땀이를 만들어 나가는데, 이는 언제나 질서가 있다. 시작과 끝선은 티가 나지 않게 이어주기, 매듭짓고 남은 손톱자국을 따라 잇기, 신체 일부를 제한하여 그리기, 직선보다는 구불구불한 선 등의 규칙은 작업마다 변할 수 있다. 특정한 질서 안에 있을 때 자유로움을 느낀다. 질서 안에서 조합 및 분해하며 만들고 그리는 작업 방식이 회화적 놀이와 가깝기 때문에, 작업은 놀이의 장소다. 또한 그 자체가 주는 만족감에 집중한다. 그래서 완성 보다는 실천하는 행위와 이 감각을 스스로 느끼는 것에 작업의 의미를 둔다. 순간과 지금이 모여 만들어낸 어떤 특이한 형상, 혹은 추상적인 풍경 속에서 관객들이 마치 ‘드로잉으로 샤워’하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이 모든 신체를 감싸는 샤워처럼, 그림이 그저 사물이 아닌 ‘젖어드는 상황’으로 인식되길 꿈꾼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땀땀이는 벽이 아닌 공간에 머문다. 손바닥만한 작은 드로잉과 오브제로 공간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패치워크 혹은 여러 레이어를 겹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땀땀이의 목소리가 차곡차곡 모인 화면 혹은 공간은 내가 읽는 사회다. 환경에 잘 적응하는 순응 땀땀이, 앞서서 땀땀이를 이끄는 리더 땀땀이,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방랑자 땀땀이,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한 유니크 땀땀이. 모든 땀땀이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 규범 안에서 그것들은 떠돌며, 흐르고, 뒤섞이며, 물살 친다. 물결 에 적응하는 방법이 각자 다르다. 그렇지만 분명한 점은 그것들 모두 흠뻑 높고 귀하다는 것이 다. 역할을 떠나 존재 그 자체로써 지지 받을 수 있는 곳을 잠잠히 꿈꾸며, 아~~주 큰 바다에게 아~~주 작은 내가 반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