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카로운 선을 통한 결핍의 증명
Artist 2창수
이갑재 작가는 칼을 이용하여 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만든다.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노동적 행위를 반복하고 이를 통해 하나의 형태를 해체하고 선과 면으로 다시 조립한다. 스스로 ‘가벼움’이라 명명되는 이런 작업은 작업을 떠나 개인 삶을 관조하는 자기 최면의 방법으로 보인다.
사람은 결핍이 있어야 욕구를 갖는다. 결핍은 목적이 있으면 생기는 것으로 목적을 세우는 것은 곧 결핍의 시작이다. 작가는 스스로 어떤 결핍에 의존한 대상을 주위에 흔한 집과 대치시켜 치밀한 선과 면을 오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집이란 대상은 모든 이가 갖는 안락함과 편안함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집은 욕망의 새로운 상징이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대상이 도시 곳곳에 널려있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스스로 신중하고 날카로우며 반복적인 행동을 한다. 이는 스스로 어떤 무형의 결핍을 만들고 다시 그 결핍을 해결해내려는 노동을 통한 결과물이 ‘가벼움의 시대’라는 주제로 보인다.


작가는 사회 상황 속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작가적 생존 모습이 작품에 있다. 작가 개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작가의 결핍을 넘어선 사회의 결핍을 이야기로 느껴진다. 결핍은 생존과 욕구에 대한 개인 갈증에서 시작되지만, 결핍이 사회적 결핍으로 확대되었을 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량의 사회 욕구는 사회의 자연정화를 파괴한다. 결핍에 대한 해결은, 그래서 근본적 이치를 깨닫고 왜 생겨난 결핍인가를 고민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작가는 이런 고민을 칼로서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점점 거대해지고 보다 발전적 사회로 바뀌고는 있는 최첨단시대인데, 주위는 회색의 콘크리트 산과 같은 환경 속에 늘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자조적 말이 들리는 사회로 되었다. 견고한 콘크리트의 강력함을 종이, 우드락과 실 등으로 더 가볍게 만들고 보이려 했다. 작가는 작품으로 ‘봐라 너희가 보고 믿는 것이 이렇게 가벼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과거 생존의 시대에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었다. 내가 선점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남이 사용하여 남의 것이 되었고 그로 인해 남이 사용하기 전 기회가 된다면 내가 있는 힘껏 모든 것을 사용해야만 했다. 이는 곧 ‘지속 불가능한 발전’이라 명명할 수 있는 형태였다.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경쟁하듯 남이 갖기 전에 내가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실행하는 중이다. 컴퓨터가 인간보다 정확해지고 머지않아 컴퓨터가 인간을 지시하고 일의 수행을 인간이 할 것이다. 좋은 결과만을 위한 일이라면 컴퓨터가 인간을 지시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지만, 인간은 과정에 따른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가 되어있다. 이는 인간이 가진 고유의 생존 방식 때문인데 이런 인간의 생존 방식도 시대에 따라 변화됐다. 생존의 시대를 넘어 생활의 시대가 되었고, 이후 감동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말은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감동과 감정을 표현 못 하고 자본에 길들여진 사회로 되고 많은 사람은 자신의 부족했고 팍팍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현실을 위안한다. 현실에 대한 해석이나 느낌보다는 위안을 통해 오늘을 극복해내는 인간 고유의 자기합리화 결과이기도 하다. 과거가 과연 행복했는가는 개인별 해석의 여지가 있겠지만 현실의 위안 방법으로 과거 감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날카로운 선으로 만들어진 물체는 서로가 포개어져 서로에게 몸을 기대어 있다. 깔끔한 선에 깔끔한 색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에게 기대어야 완벽해진다는 강박적 현실의 모습처럼 보인다. 거의 모든 대상은 정면을 바라보는 형태인데 이것조차도 한 면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현대인의 강박에 대한 모습처럼 보인다. 이번 작품은 거기에 더해져 약간의 외곽 테두리를 쳐놓아 입체감을 나타냈다. 정리된 곳 위에 다시금 결계(結界)를 놓고 더욱 완벽해지려는 습관적 강박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사회의 강박과 도시의 견고함이 허무하고 가벼운 것을 쫓는 시대로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거기에 수많은 층층의 덧대임이 있는데 앞서 말한 과거 감정을 통해 오늘을 극복하려는 자세처럼 서로의 구조를 통한 현실의 모습이 나타나있다.
모든 사물에는 거기에 맞는 형과 정신이 있다. 사물의 외형 속 알맞은 정신이 깃들 때 그 사물은 더욱 완벽해지는 것이다. 개인별 가치의 방향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양하게 바뀌었지만, 인류의 기본적 가치는 선점이 아닌 공유의 개념으로 변화되고 있다. 집과 같은 구조체의 완벽함을 보여주는 그림에서의 가벼움은 오히려 결핍의 욕망을 보여주며 더 나아가 공유사회에 대한 생명 존엄을 느끼게 해준다.



이갑재 Lee Kabjae
bonnnart@hanmail.net
-이 사업은 대전광역시, (재)대전문화재단에서 사업비 일부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