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 FAIL_ 이상균 Lee Sanggyun_ 2020.11.20-11.29

기획: 황아람
디자인: 조화라
후원: 대전문화재단

SAFE FAIL

‘SAFE FAIL’은 일부에 문제가 생겨도 전체 혹은 가장 중요한 부분에까지ᅠ영향이 가지 않도록 설계된 안전설계의 의미로 주로 건축, 산업 기계 등에서 쓰이는 용어 ‘FAIL SAFE’를 뒤집은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상균은 필드 리서치로 직접 수집한 산업 건축 이미지들을 회화의 구도, 색면, 물성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작업 시리즈를 선보인다. 작가는 마치 안전설계와 실패를 저울질하듯, 건축적 풍경을 회화로 재현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소거하거나, 자연물을 콘크리트 구조의 표면과 대조하는 동시에 동화시키거나, 건축적 소실점을 불러와 평면으로 회귀시키거나, 혹은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려 대상을 거꾸로 평탄화하기도 한다. 이상균의 회화는 구축적인 방법론을 통해 회화적 평면을 건축한다. 말하자면, 안전설계의 실패, 나아가 실패의 안전설계인 셈이다.

이상균은 지방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수로, 교각, 터널 등의 산업 건축물 이미지를 수집한다. 이제는 더 흔한 방법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위성 사진이나 인터넷 검색 이미지가 아닌, 필드 리서치를 통한 이미지 수집은 작업의 출발선을 캔버스 표면 뒤로 옮긴다. 리서치의 특정 장소에서 작가는 토방 수로 급류부, 수로교, 교각, 교량신축 이음, L형 옹벽, 낙석 방지망, 제방, 교량 난간, 준공 표지석 등 토목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건축물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작가의 시선은 때론 먼 원경에서 전체를 조망하기도 하고, 때론 앞에 있는 난간이나 표지판에 머물기도 하며, 때론 커다란 콘크리트 벽면에 고정되기도 한다. 인적 없는 외진 곳에서 행해지는 작가의 리서치는 작업의 출발선에서 한 가지 질문을 동반한다. “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먼저 작가의 이전 전시를 복기해봐야 한다. 2018년 전시 ‘My Earth Worker'(이응노 미술관)에서부터 작가는 토목 공사 현장의 이미지를 캔버스 평면에 옮기기 시작한다. 과거 토목업에 종사하던 아버지의 준공 기록을 쫓아다니다 보니 작업이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밝힌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직접, 계속, 기록한다. 2019년 단체전 ‘조각, 그림'(Weekend, 2/W)과 ‘DELAY KIT'(SOSHO)에선 자신의 기록물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몰탈(mortar)을 패널 위에 올려 굳혀서 일종의 부조(浮彫)를 만드는데, 건축적인 방법론을 차용한 이와 같은 제작 방식에서 작가는 자신의 기록물과 작업의 결과물을 최대한 근접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작가는 매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자신의 작업물이 결국 평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리서치 기록물은 대상의 표면 이상을 결코 넘어가지 않는다. 작가는 기록물을 통해 대상을 관찰할 뿐, 그 어떠한 서사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로지 대상의 표면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집중한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기록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보려고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던져 준다.

이제 이번 전시 ‘SAFE FAIL’을 다시 보면, 작가는 여전히 직접, 계속, 기록한 대상의 표면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언가 많이 다르다. 첫 번째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작가가 다시 캔버스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의적인 색면 구성이다. 이전 몰탈 작업이 회색 계열의 단색 위주로 구성되었던 점을 상기해본다면 이번 전시의 색 구성은 상당히 과감하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마치 풍경의 일부분을 확대하여 ‘크롭(crop)’한 듯한 구도이다. 작가는 이제 더는 대상의 온전한 장소, 구조, 형태를 재현하는 것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다시 작업 리서치 기록물에 대한 작가의 변화한 관점을 보여준다. 작가는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과 의무를 애써 지키려는 동시에 힘없이 내려놓는다. 이제는 관찰을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도 없으며, 방법적 모방을 위해 순서를 지킬 이유도 없다. 작가는 마음껏 원하는 장면에 가까이 들어가기도 하고, 과감히 불필요한 요소들을 소거하기도 하며, 대상이 아닌 것들마저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면 그것은 안전설계의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작가는 자유로워진 관점으로 다시금 평면을 바라본다. 생각은 물리적인 개념으로서의 평면에서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간다. 부피가 생긴다고, 소실점이 만들어진다고,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평면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반대로 캔버스가 존재한다고, 재료가 발라져 있다고, 환영이 재현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평면일 필요는 없다. 한없이 쌓아 올리지만 결국 평탄한 표면임을 자각하는 작가는 말한다. 본연의 모습과 멀어졌지만, 오히려 그 자체로서의 모습에 가까워졌다고. 어쩌면 평면에 대한 작가의 끝없는 애증과 불신이 실패에 대한 안전설계가 만들어진 이유일지도 모른다.

본 전시 ‘SAFE FAIL’에서 이상균은 기록을 구축하고 평면을 건축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글. 황아람

이상균 Lee Sanggyun

https://www.instagram.com/gyun_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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