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 근간에서 미련처럼 떠돌고 있던 것은 언제나 ‘말’이었다. 말은 곧 타자가 있어야지만 성립된다. 그리고 “상해를 겪은 뒤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나의 삶이 의존하는 사람들, 내가 알지 못하고 또 결코 알 수도 없을 사람들이 저기 밖에 있다는 점이다.” 라는 주디스 버틀러의 말과 같이 타자의 존재는 절대적인 공포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말이나 생각, 혹은 살갗과 손톱, 액체와 고체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돌연 나의 어떤 부분을 돌이킬 수 없이 파고들거나 바꿔버릴 수 있다는 사실. 저 밖에 그것들, 그 말들, 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사는 방법을 익혀야만 한다. 끊임없이 훼손당하고 침입당하고 상해를 입으면서 좁다란 통로를 통과하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경우 조금씩 깎여나가면서, 가끔은 스스로 어떤 부분을 잘라내기도 하면서. 그렇다면 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깎여나간 부분과 훼손을 조망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말과 관련된 작업을 주로 진행해왔다. 읽을 수 없는 글자, 사라진 말, 들리지 않는 말, 깎여나가는 말들에 대해 조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은 중심의 반대편으로 향하게 되기 마련이다. ‘바깥’에서 나를 향해 메아리치는 말들의 기원을 쫓아서, 또 나의 발화의 족적을 찾아서.
장례 (7min 25sec)
타자의 점액질과 거스러미를 삼키게 되는 순간 우리는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영영 죽어버렸음을 예견한다. 그 전과 그 후는 결코 같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삶은 견딤으로서 지속된다.
이 긴, 긴 밤을 지나 (4min 32sec)
무채색의 천을 뒤집어쓴 그들은 끊임없이 걷는다. 이따금 멈추어선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휴지이지 지속적인 정지가 아니다. 더 이상 지어지지 않을 건물에, 영원한 사이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기다란 복도와 아무것도 없는 공동을 지나 문지방과 열쇠구멍 사이에서 떠돌아다닌다. 지나가는 일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영원히 지나가야만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지나감’이 아니다. 떠돎이 곧 머묾이 되는 임시의 영원화 과정. 이 긴, 긴 밤을 지나면 무엇이 있을까.
무언가 (3min 51sec)
그들의 춤은 어긋나는 동시에 일치하고 일치하는 순간 어긋나기 시작한다. 같은 곳에서 시작했지만 다른 곳에 왔다. 다른 곳에 왔지만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그것은 무언가(無言歌), 혹은 무언가.
멋진 신세계 (5min 7sec)
화자는 유배되었거나 격리되었거나 혹은 스스로를 그렇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타자로부터의 침입을 원천봉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균이나 이물질이 우리 몸 속에 들어오게 될 때에 우리는 앓게 된다. 내 신체 안에 내 것이 아닌 다른 점액질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때문에 이곳은 그러한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가정된 무균지대다. 장막 안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것들과 미워하는 것들을 잃고 더 이상 나빠지지도 좋아지지도 않는 상태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감염을 무릅쓰고 장막 바깥으로 나가는 행위에 대해 생각한다.
Education
2012-2018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Solo Exhibitions
2017 미디어극장 아이공 <멸망한 나라의 글자들>
Group Exhibitions
2012 아트티갤러리 <풋풋>
2013 아트티갤러리 <프롤로그>
2014 갤러리 토픽 <문득>
2015 일단멈춤 <망망> 2 인전
Screening
2015 제15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비경쟁부문 상영
2016 제16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경쟁부문 상영
Contact
vaniling16@gmail.com
전시기간 : 4.14-4.23
관람시간 : 오후 1시-7시
별도의 오프닝은 없습니다.